어떻게 우리는 때로 외부 자극 없이도 수많은 생각을 할까? 이 모든 것이 욕구라는 후속개념으로 설명이 될까? ‘욕구’라는 말은 우리가 하는 것들에 대한 원인 자리가 비어있을 때에 magic word 처럼 집어넣은, 공허한 말일 수 있다. 왜 우리가 그것을 했어? 그것을 할 욕구를 느꼈으니깐. 자기반복적인 말일 수 있다는 뜻이다.
인류는 인과적인 과정들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. 무엇이 시간적으로 선행될 때 그것이 원인이고 후행되는 것을 결과라고 칭한다. 하지만 이것 또한 시간적 흐름에 대한 허상적 표현일 수 있다. 시간의 방향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앞에 건 원인, 뒤에건 결과라고 칭하는 게 아니라, 이것과 이것 사이에 순서를 정하고 그 방향이 시간의 흐름이다라고 역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. 역설적이게도 시간은 단독으로 느끼지 못한다. 시간은 변화를 동반해야만 말할 수 있는 개념이다. 변화가 없음에도 시간이 흘렀다는 말은 증명하기 어렵다. 그것은 곧 시간과 사건을 분리해서 해석하는 것인데, 우리는 오직 시간을 사건의 순서를 통해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둘은 분리해낼 수 없는 개념이다. 오히려, 시간이 사건의 순서에 종속적인 개념이다.
비가역적인 행위들이 시간의 흐름을 유일하게 결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. 하지만 그것 또한 단방향 중 한쪽으로만 자연적으로 관측했기 때문에, 그리고 반대방향으로는 느끼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. 비가역적인 행위는 비대칭에 대한 표현이지, 옳은 방향에 대한 표현은 아니다. 우리는 그 중 한 방향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.
그런 면에서, 우리의 인과적 사고기반은 자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. 말하자면 비가역적인 방향에 순행하는 사고방향이라는 것이다. 이 또한 자가당착적인 말이라는 걸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.
근데 또 중요한 건, 이 논리전개 과정 조차 인과적 방향에 의거하여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. 인과적 흐름에 의거했을 때 인과적 흐름이 자의적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?