우리는 어떻게 지능을 가졌을까, 생각하면, 우리는 자연선택이란 원리를 곧잘 꺼낸다. 지능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지능을 가진 존재들만이 살아남았다는 논리이다. 반대로 말해서 지능이 부족한 존재들은 죽음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. 근데, 과연 그랬을까?

지능은 어느순간까지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. 위험을 인지하고, 그것을 피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. 그렇다면 그 이후의 지능발전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? 즉, 자연선택의 원리는 threshold 로서 설명하지, 지능이 성장하는 능력은 설명하지 못한다.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: 빠르게 지능을 취득하는 존재가 위험으로부터 가장 vulnerable 한 유아기를 빠르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. 이런 논리라면 빠른 지능성장능력도 자연선택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는걸까? 하지만 이 또한 속도의 성장, 가속도까지 설명하진 못한다. 인간의 몸이 성장하는 속도는 일정하고, 건장한 육체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텐데, 거기까지를 초월하는 속도를 가지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지 몰라도, 그 이후의 더 빠른 지능 성장 속도를 설명하진 못한다.

여러모로, 도태되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. 사회가 발전하여 지능과 육체가 발달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때부터는 지능의 plateau 가 왔을텐데 우리는 그 이상의 지성을 획득하고 있다. 말하자면 그 이후는 생존과 무관한 이유로 성장을 하게된 것이다. 예컨대 스스로의 호기심이라던지, 사회의 요구라던지. 그렇다면 그런 장치들 또한 자연선택에 의하여 발생한 것일까?

욕구에 의한 극복은 그 욕구가 해소된 이후에는 그 기능을 영속하지 못한다. 그런 면에서 인간의 욕구들은 그 끝이 없다는 점에서 특이하다. 순간적으로 해소될 수는 있어도 그 이후는 또 더 큰 것을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. 욕구는 만족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. 그러니깐, 생존의 욕구가 발전하여 번식의 욕구가 된 것이고, 번식의 욕구가 성적의 욕구로, 성적의 욕구가 사회적 인정 욕구로.. 이런 식의 욕구의 체인이 때로는 고차원적으로, 때로는 다방향으로 발전하여 인간을 또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.


그렇다면, 욕구의 다음 체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? 그것은 각자 만드는 것이다. 누구는 생존의 욕구를 화합의 욕구로 발전시키기도 하고, 정복의 욕구로 발전시키기도 한다. 즉, 각자 욕구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를 각자 생각함으로써 독창적인 욕구들을 생산해갈 수 있다. 그렇다면, 각자의 독창적 생각은 어떻게 발현되는가?

그것은 바로 사고회로를 제각기 구축하기 때문에 가능했다. 각자 놓여진 환경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, 언어의 틀 안에서 논리적 생각의 흐름 방향이 수렴한다. 하지만 이것은 유일한 방향으로의 수렴은 아니라는 것이 중점이다. 언어적인 생각은 그 다음 생각이 유일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큰 역할을 한다. 따라서 syntaxic 한 규칙들 처럼 minimum 규칙으로만 느슨하게 우리의 사고를 가두지, 그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다음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다.